- 사람의 목숨값은 무한대이다.
‘잔혹한 출근’이라는 영화를 보셨는지… 여기 유괴 전문 형사가 있다. 어느날 그의 아들이 유괴당한다. 유괴범이 아버지인 이 형사에게 전화를 한다. 이 형사는 자기의 전문분야라서 유괴범의 심리를 잘 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유괴가 성립되지 않는다! 아들을 살리려면 전화를 받지 말아야 한다”며 아내가 전화받으려고 하는 걸 계속 못 받게 한다. 전화벨이 울릴때마다 전화를 받으려는 아내를 붙잡고, 둘은 부둥켜 안고 운다. 결국 유괴범은 요구조건 제시조차 못한채 애를 풀어주고 만다. 아이는 돌아왔지만 아내는 남편에게 “당신처럼 매정한 사람은 아버지도 아니다”며 아이를 만나보지도 못하게 하고 결국 가정은 파탄이 난다.
이 영화에서처럼, 냉정하게 얘기하면 “인질범들과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협상은 없다”가 정답이다. 이집트,러시아가 테러대상국가에서 빠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두 나라들은 인질이야 죽건 말건 테러범들을 다 사살해 버리겠다는 작전을 폈던 나라들이다.) 우리 정부가 테러리스트들과 협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것은 장기적으로 봐서는 손해막심이다. 중동에 나가있는 수많은 건설노동자들의 위험을 급격히 증가시키는 행위이다. 그래서, 정부에게 협상에 나서지 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의도가 무엇이건간에) 아주 합리적인 해결책을 주장하는 셈이다.
하지만, 어쩔수 없이 지금 (비공식적 채널을 통해서라도) 협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 나도 어쩔수 없이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애써 찾아보자니 적어도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사람 목숨의 가치는 무한대라는 것이다. 아무리 큰 돈을 지불해도 그 돈은 유한하지만 사람 목숨은 무한대의 가치가 있다. 둘째, 협상을 안 했을때 인질범의 반응을 예측하기가 무척 어렵다. 저 영화에서는 다행히 인질범이 생계형(?)이고 어리버리해서 아이가 무사히 돌아왔으나 (김수로가 연기했으니 성격이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내게 쓸모가 없으면 파괴하는게 낫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인질범이라면 그 결과는 끔찍했을 것이다. 셋째, 협상이 가져올 미래의 손실이 23명을 구해온 성과보다 훨씬 클지라도, 미래의 불확실한 손실보다는 현재의 확실할 성과를 추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래의 일은 미래에 걱정하고 해결하기로 하고...
- 인질들도 계급과 빈부격차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한 점이 있다. 왜 소말리아 선원 납치사건은 지금까지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서도 이번 사건은 정부가 직접 나서는가? 왜 정부는 원칙을 지킬 때도 있고 어길 때도 있는가? 일단 인질 수의 차이가 있을 것이고, 애초에 요구조건으로 내걸었던 것이 국군 철수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무시할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소말리아에 잡혀있는 생계형 어민들은 힘없도 돈없고 빽없는 사람들인 반면에 아프간의 개신교 신자들은 강남,분당에 근거를 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며 그 교회 자체가 정계,관계에 폭넓은 인맥을 구축한 소위 잘 나가는 교회이고 그 선교단의 후원단체들이 상당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단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8명이 풀려난다는데 아마 그 뒷거래에 쓰인 돈의 일부만 썼더라면 소말리아의 어부들도 진작에 풀려났을지도 모른다. 이번 사태로 새로 깨닫게 된 점은 “심지어 인질들도 계급과 빈부격차가 있다!” 혹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동의 한국 근로자 납치에 매력을 느낄지도 모르는 테러단체들에게 잘 알려줘야 한다. “헛고생 하지 마. 그 사람들은 납치해 가도 한국 정부가 협상안 할 걸. 그 사람들은 빽도 힘도 돈도 인맥도 없는 사람들이야!”
- 신사참배를 강요하러 한국에 온 필리핀 신도들?
종교를 믿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교리가 어떻고 신의 존재 유무가 어떻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의미가 있는 것은 그 종교의 역사적 사회적 역할일 뿐. 영화 ‘미션’에서 보여주었듯이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식민지 지배의 최첨병 역할을 훌륭하게 잘 수행해 주었는데, 아프간에서는 우리 개신교도들이 그 역할을 잘 대행해 주려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아프간을 ‘민주화’시킨다는 구실로 미국이 침략해서 괴뢰정부를 세웠다.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개신교가 창궐하게 되어서, 개신교를 믿게 된 한국 사람들이 몰려와서 아프간 사람들에게 (미국의 사실상의 국교인) 개신교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법석을 피운다. 아프간 사람들은 개신교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파괴하려 한다며 이 한국의 개신교 신자들에게 반감을 갖는다. (실제임.)
대한제국을 ‘근대화’시키겠다고 일본이 침략해서 식민지로 만들었다. 일본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던 필리핀에서는 일본 신도가 창궐하게 되어서, 일본신도를 믿게 된 필리핀 사람들이 몰려와서 한국 사람들에게 신사참배를 해야 복을 받는다고 법석을 피운다. 한국사람들은 일본 신도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파괴하려 한다며 이 필리핀의 일본 신도 사람들에게 반감을 갖는다. (가상 시나리오임.)
- 농활과 단기 선교…
대학 다닐때 농활 갔던 기억이 난다. 철모르던 저학년 시절에는 어줍쨚은 대학 다니고 책 좀 읽은 게 뭐 그리 별거라고 괜한 우월감과 조급증을 가지고서 “마을 분들이랑 좋은 얘기 많이 해야지.” 하고 갔었다. 게다가 ‘모범’(?)농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을 분들에게 폐도 안 끼치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다. 터무니없는 욕심이었었고 보름도 안 되는 기간은 거리감을 좁히기만 하려 해도 너무나도 짧았다.그 다음해에는 좀 더 살짝 세상을 알게 되어서인지 “마을 분들에게 좋은 얘기 많이 들어야지” 하고 갔었다. 여전히 시간이 부족했지만 좀 더 나았다. 그 다음 해에는 “열심히 일이나 도와드리고 와야지” 하고 갔었다. 모범농활의 압박감에서도 벗어나서 어떤 형님 댁에서는 술도 약한 주제에 따라 주신 막걸리를 마다 않고 계속 마셔서 결국 밤새 토하고 민폐 끼친적도 있었다. 하지만, 3년 넘게 같은 마을에 가서 신뢰감이 쌓였고 같쟎은 우월감과 먹물티와 모범농활팀 티를 좀 벗어서인지 오히려 얘기 나누고 좋은 관계 맺기가 훨씬 나았다. 이번에 단기 선교활동 갔다는 얘길 들으니 그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 개신교도들의 마인드와 접근방법이 철모르던 대학 초년생 시절과 어쩌면 그리 닮았는지 모른다. (세 분인가는 원래 거기서 장기 봉사 하신 분이라 한다. 그런 분들은 제외하고 하는 얘기다.)
농활에 관련해서 기억 또 한 가지. 농활갔던 마을에서 친하게 지내던 애들 몇이 나중에 서울에 놀러왔다. 친구 하나와 내가 롯데월드에 같이 갔다. 돈이 별로 없어서 애들만 놀이기구 태우고 내 친구와 나는 “우린 저런거 무서워해. 안 탈래.” 하면서 애들 놀이기구 타는 동안 아래에서 기다렸다. 애들 의외로 눈치가 빠르더라. 화장실 간다더니 어디선가 표를 사 와서 내밀었다. “우리도 형들이 우리한테 돈 다 써버려서 그런거 다 알아요” 하면서 씩 웃더라. 사람이 순박해 보이면 그가 아무것도 모를거라고, 눈치가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의외로 눈치가 빠른게 사람이다. 순박한 아프간 사람들도 선교팀이 뭔가 다른 목적으로 하는지 진정으로 도우려 하는지, 자신들을 깔아보는지 아닌지를 쉽게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서 더 슬프다. 그들이 못알아 듣는 한국말로 개신교 찬양 따라하도록 시켰다는 비디오를 보니 말이다.
- 무사히 돌아왔으면…
개신교의 평소
황당한 행태가
어찌되었건 이번에
잘못을 했건
안했건간에 모두들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다. 내가
차라리 개신교도이면
죽건 살건
하나님의 뜻대로
쓰였다고 무심히
넘어갈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지만(??),
개신교도가 아닌
입장에서 보자면
만일 인질들이
목숨을 잃는다면
온갖 부작용만
남기고 정말
덧없이 개죽음
당하며 세상을
뜨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디
살아돌아와서 그
고난과 영광을
그들의 하나님께
돌리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모험주의적
작태에 대해서
반성도 하고
그동안 장기
선교자들, 봉사자들,
군인들이 쌓아올린 성과를
깍아먹은 것에
대해서도 사과할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아울러
성조기 휘날리며
‘혈맹을
위해’ 파병해야
된다고 난리를
치더니 이번 사건초기에는 노무현 정부 욕해대던 주류
개신교 단체들과
교회들도 사과
좀 했으면
하고…
Posted by Rainyv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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