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횡설수설2007/12/21 22:51
아내는 원래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내가 보기엔 한국의 또래 교육학 전공자 중에서 가장 잘 나가는 대학원생 중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공부 시작할 때는 그냥 미국 대학원에 한 번 다녀 보고 싶다는 정도였을 뿐 별로 야심이 없었는데
이제 점점 야심만만해지면서 졸업 후 한국의 교육계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가끔 밝히곤 한다.

아내의 현재 주요 연구 주제 중 하나는 argumentation ('토론' 정도로 번역이 되려나?)이다.
좀 단순화하고 과학교육의 예를 들어 얘기하자면,
학생들이 실험이나 관찰 후 자신의 주장을 세우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토론을 하다 보면
이론과 결과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고 과학의 본질에 대해서도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argumentation 이 잘 이루어지도록 격려해 줄 수 있는가,
어떤 형태의 argumentation이 어떤 종류의 학습에 더 효과적인가,
학생들의 argumentation을 평가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는가,
이런 종류의 질문에 답하려고 하는 것이다.
요새 좀 뜨는 방향의 연구주제인 듯 싶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박사논문 주제를 바꿔야 하지 않은가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argumentation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논리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하는데,
이번 대선에서 보니 한국에서 논리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나는 Q가 싫다. P는 Q를 내포한다. 그래서 나는 P를 좋아한다"
("빈부격차를 줄여야 하니 빈부격차를 늘릴 가능성이 가장 큰 후보를 지지한다")
이런 논리적 판단들이 정상인 듯 활개치고 있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우면
"식사하셨쎄요?" 라고 때우는 식사준표나
"이명박은 '내가' BBK세웠다고는 안했다"는 뻔뻔한 내가경원이[각주:1]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판검사 법조인인 나라이니...
이런 나라에서 논리의 중요성이 어쩌고, 토론이 어쩌고 해 봐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밖에 더 되겠는가 하는 것이 아내의 고민이다.
아무래도 한국에 가면 낙동강 오리알이 될 방향인 듯 하니,
좀 더 한국 입맛에 맞는 방향의 연구를 해야 하나 고민한단다.
게다가 국제학회에 가서 한국 출신이 논리가 어쩌고 토론이 어쩌고 하는 연구결과를 내놓으면
그 쪽팔림을 감당하는 것도 참 고역일 것 같고 말이다.

아내의 고민을 자기 눈의 대들보처럼 생각하는 착한 rainyvale군이 생각해 낸 대안은 다음과 같다. ^^
argumentation에 미치는 권력관계(power relation)의 영향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사실 argumentation이 논리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와 같은 사람간의 요인 (interpersonal factor)가 큰 영향을 준다는 것 역시
argumentation 분석에 있어서 이미 큰 흐름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A가 B를 짝사랑하면 A는 B의 의견을 무작정 받아들이기 쉽고,
C가 학급에서 인기짱이면 C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러니까 한국의 특수한 경우에는,
집이 부자이고 주먹도 짱인 애가 무슨 얘길 하면
그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더라,
그 아이는 다른 애들이 자기 말 안 들어주면 수업자체(티비토론)를 거부하는데
그러면 오히려 다른 애들이 그 애가 토론을 잘 한다고 칭찬하더라,
그렇게 논리와 무관하게 토론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논리적인 토론이 이루어질때보다 학업성취도가 올라가더라,
그 아이의 분단이 다른 분단을 왕따시키면
오히려 학급 전체의 학업성취도가 올라가더라,
그런 학급 애들은 나중에 한국 사회에 적응력이 높아지더라,
그러니까 애들에게는 그 아이가 무슨짓을 해도 친하게 잘 지내도록 교육을 시키고,
그 아이는 컨닝(탈세)하다가 걸리면 컨닝한 답만 쓰윽 지우면 (세금만 나중에 내면) 혼내서는 안 된다.
이런 결론들을 도출하면 한국의 현실에도 잘 맞고 한국에서도 잘 팔리는 교육학 이론이 될 것이다. ㅋㅋㅋ

나는 한국에서 선생님들이 앞으로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칠지 참 궁금하다.
논리와 윤리가 무시되는 사회에서 학교에서 굳이 뭔가를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

하여간... 어제는 아내의 대선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로얄 알버트에서 커다란 토끼인형을 하나 사 왔다.
예정에 없던 지출을 하게 만든 이명박이 정말 밉다. ^^
아래는 그 사진.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각주 > --------------------
  1. 나경원의 모든 재판 속기록을 다 뒤져서 주어가 생략된 진술을 바탕으로 한 판결들은 모조리 다 무효화시켜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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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ainyv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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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야심 만만하지 않은데..

    공부를 하다보니 이런저런 것들을 전달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했을뿐이지. 지도교수는 내가 ambitious 한 걸 안다고 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아는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뿐이야. 학문으로서 교육학은 공부할게 너무 많고, 너무 여기저기 얽혀 있는 곳이 많은 거 같아.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나 교육은 그 시대의 철학, 이념, 가치관, 특정학문의 효용성등 세뇌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망라해서 집어 넣으려고 하는 노력이니 말이지. 그나저나 진짜 논문주제는 바꿔야 할까봐..쪽팔려 ㅠ.ㅠ

    2007/12/23 00:57 [ ADDR : EDIT/ DEL : REPLY ]
    • 공부를 하다보니 이런저런 것들을 전달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공부를 하면 할수록 아는게 하나도 없다...
      => 전형적인 박사과정 중기 증후군이네. ㅋㅋ

      2007/12/23 11:09 [ ADDR : EDIT/ DEL ]